• 최종편집 2024-04-12(금)
 

■ 회재 이언적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 전기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 역할을 한 인물로서,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주었다. 


이언적과 옥산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504년(연산군 10) 14세에 고향인 양좌동(양동마을)에서 멀리 않은 정혜사(定惠寺)에 머물면서 성리학 공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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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전경

 

이후 이언적은 1514년(중종 9) 별시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자신의 성리학 이론의 정치적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1532년(중종 27)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 정적들의 공격으로 파직되자 낙향을 하게 된다. 이 때 그는 어릴 때의 인연이 있었던 옥산으로 들어와 독락당(獨樂當)을 창건하고 약 5년간 머물며 학문적 업적을 완성해 나가게 된다.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은 이언적 사후 19년 후인 1572년(선조 5)에 당시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건의에 따라 건립되었다. 서원은 설립 후 1574년 사액 서원이 되는 등, 당시 조선왕조의 서원진흥책에 힘입어 급속히 발전하였다. 


특히 제향자인 이언적이 1610년(광해군 2)에 ‘동방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자 서원은 경주부의 교육·정치·사회적 활동의 중심지 역할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옥산서원의 들머리


옥산서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천과 안강을 잇는 28번 국도 옥산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약 1km를 올라가면 길 좌우측으로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띈다(그림 1). 그 중 왼쪽편의 소나무는 오는 손님에게 인사라도 하는 듯 고개까지 숙이고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 소나무 몇 그루가 옥산서원 영역의 시작점이자 서원 관람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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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의 들머리, 송단.(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이언적 사후 그의 발자취를 쫓아 여러 인사들이 옥산을 다녀갔고,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 중 이황의 후손인 이야순(李野淳)은 1823년(순조 23)에 옥산서원을 방문한 뒤 이언적의 은거지에 구곡원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옥산서원 일대에 옥산구곡(玉山九曲)을 설정하였다. 이 소나무 숲은 그 중 제1곡 송단(松壇)이다. 이에 대해서는 옥산구곡의 조영 배경이 잘 나타나 있는 남려(南廬) 이정엄(李鼎儼)의 『옥산동행기(옥산동행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야순이 또 돌아보고 말하기를, “여기는 서원 마을의 문이 되는 곳인데, 어찌 첫머리 입구로부터 구곡의 지형을 논의하여 결정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송단에 이르러, “이곳은 향과 폐백을 올리기 위해 관인들이 머물고 쉬면서 대개 관복으로 갈아입는 곳이니 제일곡(第一曲)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 옥산서원 관람은 옥산천을 건너가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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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형태.(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옥산2리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독락당과 옥산서원 방향이 갈리는 작은 다리가 있다. 여기서 옥산서원으로 가려면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측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어 옥산천을 따라 조금만 가면 유물전시관이 있고 이내 옥산서원이 보인다. 


그러나 이 길은 근래에 들어 차량 진입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 다른 진입로는 다리에서 좌측 독락당 방향으로 약 300m 더 걸어 올라가 우측(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옥산천의 외나무를 건너가는 길이다. 바로 이 길이 과거 조선시대 선조들이 이용했던 주 진입로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물을 가로질러 건너는 접근 방식은 사찰, 서원 등 우리 전통 건축문화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물길을 건너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세속의 세계인 이곳에서 구도와 학문의 세계인 저곳으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풍수의 관점에서는 산줄기의 기운이 물줄기로 가두어진 명당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과거 옥산천 물줄기를 건너 서원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몇몇 남아 있다. 그 첫 번째는 하마비(下馬碑)다. 하마비는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을 포함해 왕이나 장군,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져 있는 돌비석(石碑)이다. 


하마비 앞에서는 글자 그대로 누구나 말에서 내려야 하며, 이것은 배향하는 인물 및 무덤 속의 주인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옥산서원의 하마비는 근래 그림2의 B지점으로 옮겨졌지만, 불과 몇 년 전 까지 A지점에 있었다. 하마비의 위치는 과거의 선조들이 옥산천을 건너 서원으로 들어갔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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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입로에서 볼 수 있는 서원 건물과 주산의 어우러짐.(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둘째, 옛날 진입로로 들어왔을 때, 서원 건물과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산봉우리가 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그림 3). 풍수에서 터의 바로 뒤를 받치고 있는 산을 주산(主山)이라 한다. 옥산서원의 주산은 서원의 뒤(동쪽)에 있는 182m봉이다. 주산의 형태가 솥뚜껑을 엎어놓은 듯 반듯하고 균형이 잡혀 있는 길한 모습으로, 서원 건물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는 듯하다. 


■ 옥산서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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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흐름.(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이쯤에서 옥산서원의 산줄기 체계를 들여다보면, 서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출발점은 낙동정맥 상의 600m봉이다(그림 4). 낙동정맥이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동안, 600m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온 하나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어래산(572m)을 일으킨다. 

풍수에서는 한 도시를 대표할 만큼의 큰 역량으로 후방을 받치고 있는 산을 진산(鎭山)이라 하는데, 어래산이 안강읍의 진산이 된다. 어래산에서 서쪽으로 뻗어간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뻗어 가 서원의 주산인 182m봉을 일으킨 다음 서원으로 이어진다. 


■ 옥산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이며, 특히 겨울의 북서풍은 건축 및 난방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 선조들의 생존까지도 위협했다. 따라서 자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건축물의 터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요지(凹地)형이 선호되었다. 


옥산서원 또한 주위 산줄기로 둘러싸인 요지형에 터를 잡아 바람의 피해를 막고자 하였다. 서원 정문인 역락문에 들어서 무변루를 마주해 우측으로 고개 를 돌리면, 약 1m 높이의 둔덕이 보인다(그림 5). 둔덕 위는 작은 공터로 되어 있고, 그 위로는 관리사 건물이 있다.


이 둔덕이 옥산서원의 청룡 산줄기다. 그리고 그 반대쪽(북쪽)에는 비슷한 높이의 산줄기가 뻗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것은 서원의 백호 산줄기다. 따라서 청룡과 백호 산줄기로 둘러싸인 내부에 서원의 중심 공간인 강학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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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중심 공간인 강학 영역이 청룡과 백호 산줄기로 둘러싸임.(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서원을 감싸고 있는 담길을 따라 뒤편에 가면 옥산서원과 마주보고 있는 자옥산을 볼 수 있다. 풍수에서는 터 앞에 있는 산을 안산(案山)이라 한다. 안산은 터와 직접적으로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높이와 형태 등에 따른 기운을 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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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의 안산, 자옥산.(사진제공=영남실학풍수연구소)

 

옥산서원의 안산은 자옥산이다(그림 6). 옥산서원의 ‘옥산(玉山)’ 이라는 명칭이 ‘자옥산(紫玉山)’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자옥산의 형태는 풍수적으로 길상이다. 마치 한 마리의 큰 새가 날개를 좌우로 펼치고 서원을 향해 날아오는 듯한 형상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상을 두고 ‘주작상무(朱雀翔舞)’라고 하며, 대단히 길하게 여긴다. 옥산서원을 방문한다면 돌담 뒤로 돌아가 서원 지붕 너머로 보이는 자옥산을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 본 글의 일부 내용은 한국서원연합회, 『한국의 서원유산1』, 도서출판 문사철, 2014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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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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